작作 2017. 4. 1. 18:00

나는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든다. 비좁은 내 자취방.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강력한 수면욕이다.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알람 화면을 쓸어올린 뒤 나는 꾸던 꿈을 이어 꾼다. 얼마쯤 흘렀을까, 수면욕을 이기고 올라오는 이 느낌은 단전 아래의 무언가가 수축하는 강한 긴장감, 배설욕이다. 가득 찼던 무언가를 비워 내며 비운다는 것의 의미를 말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하는 한편, 스스로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런 위 근육의 경련이 나의 뇌에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아침은 뭘 먹을 거니? 식욕이다.

아침 상을 차리며 오늘 아침 나의 행적을 되돌아보니 인간이란 참 많은 욕구에 둘러싸여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식욕은 아마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욕구일 것이다. 거의 모든 욕구들이 식욕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이를테면 배설욕은 비우려는 욕구라는 점에서 식욕과 반대되어 보인다. 그러나 성공적인 배설 후에 느껴지는 묘한 뿌듯함은 실은 먹은 것을 잘 소화시켰다는 성취감에 다름아니다. 또 식욕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욕구인 소유욕의 근원이기도 하다. 인간의 첫 소유물은 아마 먹다 남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아꼈다 이따 먹어야지하는 생각이 소유욕의 본질인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완성된 오늘의 아침 메뉴는 야채계란볶음밥이다. 달군 후라이팬에 마늘을 먼저 볶고 양파, 당근, 파프리카 등 집에 남은 갖은 야채를 썰어 넣은 뒤 계랸을 스크램플하고 밥은 나중에 넣는다. 다 볶은 후엔 참기름 한 방울로 마무리한다. 맛있다. 식욕이 가장 중요한 욕구인 이유는 가장 큰 기쁨은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심때쯤 되자 귀찮음이 밀려 온다. 매 끼니 식욕이란 놈을 위해 서로 다른 메뉴를 생각해 내 요리하고 또 뒷정리를 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식욕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일단 너무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또 우리가 먹은 음식이 소화되면서 배출되는 활성산소는 우리 몸을 노화시킨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하는데, 그 먹음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이랴, 인간의 식욕은 가축들을 공장식 사육의 울타리에 가두고, 광우병이라든지 AI와 같은 끔찍한 질병들을 만들어냈으니 죄스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식욕은 소유욕을 만들어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 그리고 소유에 의해 소외된 인간의 존재와 같은 문제들을 보면 이는 가히 인류사적인 문제라 할 만하다. 그러니 점심은 그냥 라면을 먹기로 한다. 그냥 라면일지라도 물은 꼭 계량하여 정량을 넣는다. 내용물을 넣는 순서는 건더기, 분말, 면 순이다. 탱글하게 한답시고 면을 들어올리는 행위는 면의 무게 때문에 그 나선이 풀리도록 해 되려 맛을 해치므로 지양한다. 후루룩, , . 나는 잠시 설거지를 잊는다.

끼니를 여러 차례 걸러 배가 아주 고플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것보다는 살기 위해서는 일단 먹어야겠다는 것에 가깝다. 그 때의 식욕은 욕구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그러므로 욕구라는 의미에서의 식욕은 주린 정도로 배가 고픈 경우보다 출출한 경우에 더 강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점심에 라면 하나만을 먹은 오후, 지금 나는 출출하다. 말하자면 아주 강한 식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냉동실에는 냉동 피자가 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다가 그냥 냉동실 문을 닫는다. 지금 피자를 먹으면 저녁을 못 먹는다. 그러면 밤에는 다시 출출해진다. 그래서 야식을 배달시켜 먹으면 나는 살이 찐다. 요컨대 식욕의 부작용은 출출함에 반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욕구는 많은 경우 필요를 초과한다. 흘러넘친 욕구는 뱃살을 만들고, 뱃살 있는 자와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자 사이의 대립을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출할 때 먹는 대신, 배고플 때 먹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 출출함은 배고픔이 된다. 저녁 메뉴는 제육두부김치로 정한다. 파기름을 내어 볶다가 돼지 앞다리살과 만들어 둔 양념장을 넣어 익힌다. 적당히 핏기가 가시면 잘 익은 김치를 넣어 같이 볶는다. 두부는 살짝 삶아 접시 가장자리에 늘어놓는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많다. 돼지고기 1인분, 두부 1인분, 김치 1인분을 생각 없이 넣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럴 때는 근처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필요한 것보다 많은 것은 나누면 그만이다. 배고팠다며 달려온 친구의 손에는 막걸리 두 병이 들렸다. 설거지는 하고 가라, 제육김치와 잘 어울리는 막걸리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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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벼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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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 2017. 1. 6. 17:27

 CES: Consumer Electronics Show. 소비자가전쇼. 매년 1월 라이스베이거스에서 미국소비자기술협회의 주최로 열린다. 이들이 선정한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한계를 극복하는 접근성"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활용해 왔다.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은 18세기의 산업혁명이었다. 한편 20세기 여성해방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은 세탁기라는 도구의 발명이었다. 이러한 도구와 기계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인간이 기계적 작업과정의 부품으로 소모되는 인간의 노동 소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번 CES가 던진 화두의 핵심어는 접근성이다. 기술 발전을 통해 인간이 생활 편의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CES는 인간중심성을 지향한다. IT와 의료, 레저, 교통 등 생활 기술의 접목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대표적인 혁신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국내 언론의 보도는 LG의 OLED 기술 등에 집중되었다.

 마리나: 요트, 모터보트 등의 선박을 위한 항구로 방파제, 계류시설, 육상 보관시설 등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과 클럽하우스, 주자장, 호텔, 녹지공간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항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증강현실: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 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시가 포켓몬 고이다. 더 이전에는 착용하고 바라보는 인물의 전투력을 산정하여 화면에 표시해 주는 고글인 드래곤볼의 스카우터 역시 증강현실의 사례이다. 반면 가상현실은 그 배경까지 모두 새로 창조된 가상세계를 기기를 통해 접하는 것이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빨간 약을 먹기 전까지 가상현실의 세계를 살고 있었다. 증강현실은 빅데이터 기술과의, 가상현실은 여행산업과의 결합이 기대된다.

 이는 미술에서의 하이퍼리얼리즘과도 연결된다. 하이퍼리얼리티는 원본보다 더 원본같은 가상의 실재를 의미한다. 이 때 가상이 원본을 추종한다는 원칙은 전도되고, 원본이 가상에 맞추어 정의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친구들과 카페에 간 경험을 SNS에 올리는 것이 기존의 원칙이라면, 오히려 SNS에 올리기 위해 카페에 가는 전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블록체인과 민주주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2&contents_id=57231 

상하이컨테이너지수: SCFI. 해운업의 운임을 가늠하는 지수이다. 특히 컨테이너선의 운임을 측정한다. 철광석과 석탄 등을 운반하는 벌크선은 발틱 운임지수(BDI)를 통해 등락을 살필 수 있다. 2015년 이후 상하이컨테이너지수는 급락하여 2016년에는 500대에 머물렀다. 이는 2010년대 초반 해운업 활황기에 많이 공급된 선박에 비해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2014년 기준 346억 달러의 외화 수익을 기록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다. 아울러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해외 무역이 경제의 핵심인 한국의 특성상 해운업의 상품운송기능은 국가경제의 기반이다. 한편 전시 상황에서 물자운송 등의 기능을 수행하여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한다. 해운사 지원해야 하는가? 국익의 관점. 

 재정 자립도가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들이 국제 행사를 일단 앞뒤 재지 않고 유치한다. 성공리에 진행이 되면 지자체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혹시 재정 등의 문제로 성공적인 개최가 어려워지면 국가 신인도의 하락을 우려한 중앙정부가 재원을 투입하여 행사가 원활히 진행되도도록 한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국제 행사 개최가 꽃놀이패인 셈이다.

기업분할: 회사의 특정 부문을 독립시키는 경영상의 제도이다. 회사 설립 뒤 출자를 통해 사업부문을 분리하는 분사와는 달리, 자본과 부채를 모두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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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2017. 1. 6. 13:07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우에

습한 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龍宮의 誘惑에 안 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불상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질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沈澱하는 푸로메디어쓰


 프로메테우스도 토끼도 유혹에 넘어간 이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하려는 유혹에, 토끼는 거북이의 꾀임에 넘어갔다. 그런데 토끼는 코카서스의 산중에서 도망쳐 왔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끝없이 침전하는 중이다. 그리고 토끼는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킨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여윈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내준다. 토끼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고 다짐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불 도적질한 원죄를 안고 아직도 가라앉고 있다. 

 괴로워하는 프로메테우스와 다짐하는 토끼는 모두 윤동주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다. 그러나 빙빙 돌며 간을 지키고, 유혹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토끼의 모습이 있었기에 우리가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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