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16. 12. 27. 15:17

2015.08.05

  이제 나름대로 짬이 좀 차서 선임 행세를 하고 다닌다. 짬찌 시절에 나는 이러이러한 선임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그대로 하지는 못하더라도, 짜잘한 악습을 없앤다든지, 원래 내 보직에서 하는 일인데 예전 사람이 안 하고 막내 시키던 걸 내가 하기로 한다든지, 후임이 힘들어 하는 게 있다 싶으면 얘기를 들어준다든지, 누가 뭘 부탁하면 짬티 안 부리고 해준다든지 하면서 좋은 선임이라는 얘기도 몇 번은 들었다. 후임들이 어려운 얘기도 나한테 스스럼없이 꺼내 놓을 때면 (가끔 귀찮지만) 잘 살았구나 싶기도 하다.
  다만 이러저러한 일들을 한다고 해서 내가 마치 정말 좋은 인간이 된 것마냥 자위하는 건 헛되다는 생각을 한다. 기실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좋은 일들이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라면 당연한 일들이다. 개중에는 사회에서 그렇게 안 했다간 사람 취급 못 받을 일들도 있다. 그러나 짬 찼으면 대접받는다는(짬찌들은 원래 고생한다는) 시스템 덕에, 나는 선임으로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특별히 마음 써서 해준다는 자기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편 짬찌들(직원-대원 관계에서 대원도 마찬가지다)은 아무리 마음(몸도) 써서 남들 편하라고 일을 해봤자 원래 할 일 한 거라는 무신경함을 얻을 뿐이다. 권력관계의 우위자가 도덕적 우위자가 되기는 참 쉽다는 생각이 든다. 참 불공평한 일이다. 물론 그 쉬운 일도 안 하는 경우가 아주아주 많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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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벼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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