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評 2016. 12. 27. 15:14

2015.06.23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후마니타스, 2010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야기의 전모와 내재하는 논리를 파악하기에 나의 시야는 항상 좁았고, 그런 한계의 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또 그에 기반해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어떤 절대지(知)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 한 개체로서 고유한 존재방식을 갈구하는 것이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본다고 말할 때 나는 동시에 나의 존재를 본다. 그 인식의 결과인 '내가 본 세상'은 곧바로 '타인이 본 세상'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소통의 시작이다. 존재방식은 곧 소통방식이 된다. 작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The more one is conscious of one's political bias, the more chance one has of acting politically without sacrificing one's aesthetic and intellectual integrity.
자기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인식할수록 스스로의 미적·지적 완결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은 내가 특히 정치 분야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시야를 넓히고, 그 가운데 내가 어디 즈음에 서 있는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른 책이다. 19세기의 자유주의·보수주의에서 현대의 자유주의·보수주의에 이르는 당대의 주류 사상들과 더불어 그 사이의 이념들인 아나키즘, 맑시즘, 공산주의, 파시즘·나치즘, 그리고 현대의 새로운 이념분파들인 급진적 그리고 극단적 우파와 좌파에 이르기까지 12가지의 정치 이념을 이 책은 망라한다. 서술 방식 면에서는 이들 이념을 평면적으로 나열하기보다 각 이념들을 4가지의 철학적 가정과 7가지의 정치적 원리라는 기준에 따라 분석해 입체적으로 다룸으로써 하나의 정치사상 지형도를 그려낸다. 
  각 이념의 전제와 주장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단순히 각 이념의 편향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항목별 분석에 따라 각 이념의 비교와 유형화가 가능해지고, 이는 사상의 지형도 위에 놓여진 도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각각의 이념들이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들이 모아지고, 이를 이 책은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철학적 가정 중 하나인 존재론적 관점에서, 우리는 지난 세기들의 경험을 통해 국가, 인종, 종교, 혹은 특정 방향으로의 역사적 진보 등의 궁극적 실재를 상정하는 정치 이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기에 다른 어던 이념적 가치보다 인간의 삶, 인간의 가능성을 앞에 두는 유연한 존재론에 기본적으로 합의한다. 이 때 유연한 존재론이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는 다원주의 정치이념은 잠정적이다. 생태주의 이념은 인간이 피할 수 없이 속해 있는 자연이라는 실재를 현대의 주류 정치가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현재의 다원주의 정치는 생태 윤리적 존재론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이념들 간의 끊임없는 소통의 결과이다. 
  위와 같은 일반적 차원의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실제 정치 공동체의 정치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정치이념으로서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정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는 이 작업은 특히 보수주의 헤게모니에 맞서 새로운 판을 구성해야 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지난 몇 년간 보수 정권에 쏟아졌던 비난은 보수주의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소통의 부재, 책임성 결여와 같은 다원주의의 부재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다원주의-반(反)다원주의라는 갈등축이 두드러진다는 사실 자체가 실제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갈등축이 배제된 채 중산층과 정치엘리트들의 무대가 된 한국 정치의 문제를 방증한다. 단순히 타협에 기반해 다원주의 정치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편향성을 다원주의의 틀 안에 녹여내는 것이 진보주의의 과제이다.

posted by 벼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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