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3
김부겸 당선인 강연. 20대 총선과 한국정치의 변화. 정리와 코멘트
1. 개괄: 정당의 패배 - 국민의 승리.
어느 한 정당도 온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올초 개헌선 까지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다가 결국 1당 자리를 내주었다는 면에서 명백하게 패배했다.
더민주는 아슬아슬하지만 1당 자리를 차지했고, 그 기반에는 수도권에서의 대승과, 경남경북에서의 약진이 있었지만,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에 밀렸고, 호남에서도 많은 의석을 잃었다.
국민의당은 정당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며 제 3당으로서 스윙보트의 지위를 얻었지만,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
-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 : 야권의 분열('야권'의 '분열'이라는 표현은 마치 원래는 '야권'이라는 실체가 존재하고 그것은 '분열'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에서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대승한 것은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새누리당 지지층 내 합리적 보수층을 국민의당과 더민주로 끌어들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에서의 실책이 결정적이었다. 더민주 내에서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겠다.
- 분할 투표: 한편으로는 분할 투표의 양상이 두드러졌다. 더민주와 새누리의 지역구 지지자들 중에서 국민의당에 정당투표한 비율이 높았다. 나만 해도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의 정당이 달랐다. 이러한 양상은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고,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그 수혜를 입게 될 것으로 보았었는데, 정의당보다는 국민의당이, 예상보다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 국민의당이 견제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 것인데, 다만 이것은 국회에서에 한하는 것이지 정당투표가 없는 대선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총선에서의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가 대선에서의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기존 정당체제/선거 행태의 변화
-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 붕괴. 유시민이 말했던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를 보낼 35%는 붕괴되었다.
- 지역주의 균열. 지역주의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김부겸 당선인을 비롯, 순천의 이정현, 전주의 정운천, 부산 및 경남의 더민주 당선인들, 그리고 노회찬(창원 성산은 원래 이미 민노당 권영길이 당선되었던 곳이라는 배경이 있기는 하다)등 기존의 지역주의에 균열을 내는 선거 결과들이 있었다. 이미 지난 총선부터 그러한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원조 격은 아무래도 노무현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정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강연 후 거버넌스의 이해 모임에서 김의영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투표가 갖는 효용성은 그것이 집단지성을 가능케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하면 그 결과에 서로 다른 이익들이 잘 반영되어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투표를 통한 집단지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왔다. 내 생각에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역주의이고 하나는 북한 문제이다. 집단지성의 논리는 말하자면 젤리과자가 병에 담겨 있을 때,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 젤리과자의 숫자를 어림한 값을 평균내어 보면 실제 젤리과자의 개수에 수렴한다는 것인데, 만일 사람들이 저 병에 들어 있는 젤리과자는 500개 이상일 거야, 라는 편견을 가진 채 그 수를 어림하게 된다면 그 평균값은 실제 개수에서 멀어지게 된다. 한국에서 그러한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지역주의와 북한 문제이다. 유권자들의 자신의 이익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라 안돼, 빨갱이라 안돼, 하는 식으로 편견에 의해, 선동되어 왔다. 그 한 축인 지역주의에 균열을 더욱 확장시킨 것이 이번 총선의결과다.
- 청년 세대의 선거 반란. 2-30대의 투표율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청년이 모든 걸 다 했다! 고 말하는 것은 청년 책임론의 또 다른 형태이겠지만, 의미가 있는 현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3. 전망.
- 전국정당.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전국정당이 의미하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듯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듯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한국의 정당들은 그러지 않아 왔다. 그들이 대표한 것은 지역과, 빨갱이 때려잡는 애국자 였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더민주가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면 뭘 대표할건데? 하는 질문이 남는다. 경제 민주화인가? 아니면 그보다 왼쪽의 재벌개혁인가? 아니면 오른쪽의 노동개혁인가? 경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고,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전국정당이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정책정당이 된다는 것이다.
- 사회적 대타협. 김부겸 당선자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했다. 지역주의 타파에 이은 다음 과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잘 해보셨으면 좋겠다.
4. 강연에 대한 인상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어렵지 않게 잘 하신다. 군대 가기 전에 정치학전공 모임에서도 한 번 만났었고 그때도 느꼈었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대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아직까지 정책적 대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대구에서 당선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질문 받고 대답하는 걸 봤을 때도 적절한 대답들을 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듯싶고,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評'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 양원보 (0) | 2018.09.23 |
---|---|
최장집 외,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인용 (0) | 2016.12.27 |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0) | 2016.12.27 |
안드레아 즈비아긴체프, 『리바이어던』, 2014 (0) | 2016.12.27 |
오지은의 노래들 (0) | 2016.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