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16. 12. 27. 13:47

August 26, 2013


요즘 하는 생각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 끝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능 문학의 시험지들이 그 손가락에 해당한다. 물론 종국(도대체 그것을 종국이라 부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에 가서는 그 손가락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릴 것이나,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알량하게나마, 수능 문학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를 이야기하고파 욕심을 내게 된다. 그리하여 종종은 서로 말을 끊고 시를 고스란히 읽어 보기도 하나, 내가 하는 수업이란 대부분 차갑고 딱딱한 언어로 시를 썰어낼 뿐이어서 안타깝다. 
다만 그러면서도 그렇게 시행들을 차갑게 토막내는 것은 그저 토막을 위한 토막이 아니라, 시를 좀 더 좀 더 먹기 쉽도록, 그래서 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시 토막은 손가락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의 출발점 정도는 될 것이다. 어쨌든 화자니 대상이니, 감각적 이미지니 하는 손가락들을 공부하며 잠정적인 달을 상정해 보는 것은 과외에서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미다.

손가락과 달에 관한 저 금언을 누가 말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나, 내 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어느 스님이 쓴 책의 제목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것은 불가의 질문방식이다. 손가락의 끝에는 불가 수행의 차가운 금욕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손가락에서 멈출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어디일 것인가? 손가락(指)이 앎(知)과 한자음이 같은 것은 기막힌 우연이 아니면 필연이다.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지식이라는 손가락의 끝에는 객체의 파편들만이 남는다. 지식은 어디로 가는가? 종종 이 질문은 이렇게도 변용된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

일전에 한 글에서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읽었다. 이 질문들에 앎이 가리키는 것은 사랑이라고 대답하면 꽤 괜찮은 손가락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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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벼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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