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評 2016. 12. 27. 14:53

2014.01.12

감상 - 허진호 감독, 한석규·심은하 주연,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여름 안의 겨울. 이것은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사랑 이야기다. 죽어가는 자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에서 정원은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했듯 삶으로의 에너지는 언제나 죽음으로의 에너지를 내포한다.(우리가 살기 위해 들이마셔 태운 산소는 활성산소가 되어 우리를 노화시킨다) 우리가 만날 때, 그 만남은 죽음 때문에든 무엇 때문에든 이별을 예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가는 자의 사랑 이야기는 차라리 우리들의 이야기이겠다. 그럴것이 영화 속의 두 남녀는 (남자가 시한부라는 것만 빼면) 너무나 평범한 두 남녀다. 서로를 빠져들게 하는 위대함도, 그런 위대함을 가장하는 진한 사랑고백도 없다. 그들은 그저 '서로만 보면 웃었'을 뿐이다. 한편 다림은 정원과의 술약속이 '그냥 가기 싫었'다. 아마 종종은 그 만남 속의 이별이, 여름 안의 겨울이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의 만남과 다를 것이 없다.
이별(정원의 경우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남녀의 감정은 영화에서 섬세하게 그려진다. 정원은 먼저 분노한다. "내가 왜 조용히 해. 조용히 좀 해 씨발. 내가 왜 조용히해, 내가." 정원은 왜 죽어야하는 사람이 자기냐고,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상관도 없는 장소에서 분노한다. 친구들과 만나고, 아버지에게 비디오 사용법을 알려주며(그 때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였다) 차분히 신변을 정리하는 듯하지만, 비디오 사용법을 잘 익히지 못하는 아버지를 참지 못하고 방에서 나가 버리는 정원의 모습은 그의 안에 끓고 있는 갈 곳 없는 분노를 보여준다. 그 분노는 어느 날 밤 방에 혼자 누워 베개로 입을 막고 흐느끼는 정원의 울음에서 슬픔으로 흘러나온다. 
어쨌거나 친구들이든 아버지든 사진관이든, 자기 삶의 단면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던 정원이 어쩐 일인지 다림은 놓아두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러 오는 여자 하나 없냐고, 부를 사람 없냐고 묻는 여동생의 말에 정원은 단호하게 보고 싶은 사람 없다고 답한다. 둘이서 항상 만나던 사진관 역시 다림에게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문을 닫아 버린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미 오랜 시간 죽음을 준비해왔을, 그래서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고 숨기는 정원에 비해 다림의 감정변화는 다이내믹하다. 문을 열지 않는 정원의 사진관 앞에서 다림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사진관 문에 꽂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편지가 그대로 있자 편지를 다시 꺼내려다 그만 사진관 안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기다림은 쌓이고, 모두가 즐기고 있는 클럽 파티에서 다림은 혼자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운다. 울고 나선 아마 화가 났을 거다. 다림은 삶의 에너지가 흐르는 사람이니까, 우는 자신에게도, 울게 한 정원에게도 화가 났을 거다. 그리고는 커다란 돌멩이를 정원의 사진관에 던져 유리창을 깨뜨려 버린다. 그리고는 깨진 구멍으로, 자신의 깨진 마음을 들여다본다. 
정원이 다림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정리할 수 없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사진관을 정리하러 온 정원은 다림의 편지를 발견하고, 그 답장을 적는다. 그러나 그 마지막 편지마저 정원은 부치지 못한다. 그것은 부치지 ‘못한’ 것이다. 그 편지를 상자에 담아 둔 채 정원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다. 영화 중반 자기의 영정사진을 찍어달라며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온 할머니와 그 장면은 겹친다. 영정사진을 찍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원은 영정사진이 찍히는 마지막 순간, 웃는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영화 마지막 부분의 내래이션이 말해준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람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내레이션이 흘러나올 때 초원사진관의 쇼윈도에는 다림의 사진이 꽂혀 있고, 다림은 그 앞에서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사진이 전하는 말은 다림은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다림도, 웃었을 것이다. 
이제 8월의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여름 안의 겨울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겨울이지만 그냥 겨울이 아니다. 예수의 탄생일, 모든(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의 축제. 프로이트가 삶으로의 에너지는 죽음으로의 에너지를 내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반대로 죽음 역시 삶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림과의 만남과 이별은 정원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한 하나의 창조. 그리고 바라건대 다림에게도 정원과의 만남과 이별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기점이 되었다면, 우리들의 사랑도, 비록 허무하게 꺼져 추억으로 그칠지언정,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것이리라.

posted by 벼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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