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너를 사랑한다고 할 때

벼린눈 2016. 12. 27. 14:38

2013.10.05

너를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바로 지금 너, 라고 나에 의해 불리고 있는 그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 무엇 앞에서 내 사랑은 너무 가볍다. 나는 내게 비친 너를 사랑할 뿐이다. 만일 그게 아니라 나는 너 자체를 사랑하는 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손가락 하나 정도가 변한 너라도, 아니면 온 몸이 변한 너라도, 어쩌면 맘마저도 변한 너라도, 심지어는 너의 죽음조차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 무엇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록 아름다우나, 그러나 결국 인식될 수조차 없는 너 자체 앞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한 것인가 절망한다.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너 라는 이름을 사랑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나는 내 멋대로 네게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멋대로 너의 이름을 불러 내게로 와 꽃이 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너의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스스로 이름붙인 너를, 나는 다만 말없이 지켜보고 위로, 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의 불완전함에 대한 인정이고 위로다. 그것은 완전한 네가 내 안에 맺는 서사의 종결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가 우리 사이에 푸는 서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