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글쓰기에 대하여

벼린눈 2015. 4. 7. 13:07

글쓰기에 대하여

 나는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순다. 글쓰기는 몸부림이다. 내가 내가 되기 위한 몸부림. 나는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기 때문에 글쓰기는 덧없지만, 그것은 한때뿐인 허망함이 아니라 영원한 덧없음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짓는다. 글은 곧 나다. 스스로 글을 쓰고 싶은지를 '뼛속까지 깊이 들어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한 말은 이제 어디에서든 비스무리한 표현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릴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것을 글을 쓴다는 것이 곧 너를 너이게 하는 일인지를 느끼라고 말한 것. 그것은 내가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지와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 때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단 차라리 신내림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과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나는 나를 나이게 하는 수단, 즉 소통의 수단으로 글쓰기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 때 글쓰기는 그 한계를 부순다. 설명될 수 없는 세상 그 자체가 글에 담겨 언어로 재단될 때 글쓰기는 그 효용성을 얻음과 동시에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글쓰기를 내 수단으로 삼았을 때 나는 내 글에 머무를 수 없고, 다음 글로, 새로운 나로 넘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글은 효용성도, 한계도 없다.


2014.1.30.